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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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서신원 2015년 1월호 Reload
작성자 : 관리자
2015-04-28 17:45:35 , 조회 : 1318
     
기독교인의 시간의식
 
2015 01 31 권호덕 총장
 
성경은 인간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매우 관심을 큼을 가르친다. 기독교가 이 두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기 때문에 참된 기독교인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막연하게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의 특징이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데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대개 자기 생명의 근거나 출처를 모른다. 동시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방향키를 상실한데 그 특징이 있다. 소망이 없는 자들이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기 목숨을 쉽게 끊어버리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인간의 이런 중요한 질문은 시간관 내지 역사관은 인생관 내지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내가 어떤 시간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관이 결정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시간의식은 유교의 과거지형적인 시간관,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 시간관, 샤머니즘의 현세에 복 받으려는 시간관이다.
유교적 과거지향주의적인 시간관은 항상 옛것이 좋다는 사고방식에 나온 것이다. 즉 요 순 시대의 태평세월을 그리워하면서 후대의 왕들을 요 순 왕과 비교했던 것이다. 유교가 말하는 효도도 과거지향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이런 데서는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중요시되고 어른들 내지 스승의 가르침을 비판할 수 없다. 이런 데서는 학문이 발전할 수 없다.
윤회적 시간관은 한편으로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즉 해탈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결과 자기 구원에만 몰두하여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이루는 동시에 삶의 주 무대가 이 세상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현실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구축한다. 샤머니즘의 기복신앙은 항상 현실의 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실중심적이다. 한국인들에게 미래 지향적이고 백년대계에 관심이 적고 현재 자기만이 영화를 누리려는 생각은 이런 시간관과 관계한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시간관을 우리에게 요구할까? 성경은 과거 사건을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신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출애굽 사건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구원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과거만 생각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동시에 미래의 시점을 항상 바라보며 살아갈 것은 가르친다. 구약의 성도들은 구원자인 메시아가 강림하는 날을 고대하며 살았다. 신약성경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수렴하고 있다. 동시에 현재의 삶을 매우 충성스럽게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되돌아보는 일과 동시에 미래의 한 시점으로 향하는 사고방식 사이에 생긴 현재의 영적인 긴장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의 이런 시간관을 생각할 때 순장교단 성도들은 출애굽 사건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흥남부두 철수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소규모였지만 지도자 목사 한 분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이 함께 탈출한 사건은 기념할 만한 사건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당시에 일하신 성령의 역사를 망각해서는 안 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지도자의 청교도적 목회철학이나 신앙정신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건에만 매달리게 되면 과거지향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미래를 향한 생산적인 과업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곡된 보수주의신학의 결점은 항상 과거에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동시에 순장교단 성도들은 미래를 향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정복하는 과업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소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런 미래지향적인 사명감이 있는지, 교단적인 차원에서 이런 사명감과 비전이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자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동시에 최후의 심판 내지 계산할 날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겐 몇 달란트가 맡겨졌을까? 우리 교단에게는 몇 달란트가 맡겨졌을까? 오늘의 교단 현실을 바라볼 때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은 왠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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