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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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서신원 2016년 6월호 Reload
작성자 : 관리자
2016-06-23 10:41:06 , 조회 : 1446
     
이름 없는 별들
 
권호덕 총장
 
  이것은 필자가 매우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에 본 영화 제목이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의 광주학생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그 당시 한국학생들은 거만한 일본 학생들에게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다. 11월 어느 날 기차 통학을 하던 한국 여학생이 일본 남학생에게 희롱을 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한 한국남학생이 싸움을 시작함을 통해 광주학생사건이 터져 전국에 퍼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당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희생한 내용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이런 ‘이름 없는 별들’은 그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 역사 속에는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희생당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국군 전쟁 희생자 발굴단은 아직도 유골이 발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육이오 희생자들이 12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그들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나라의 부름에 응했다. 그들에게는 손발을 잘 보호하는 장갑과 신발도, 추위에서 몸을 보호해 줄 군복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차가운 겨울에 살을 애를 듯한 추위에 떨어야 했고 무더운 여름 따가운 태양볕을 견디며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도 않고 귀가길이 불투명한 전쟁터로 길을 떠난 것이다.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이 팽배하는 지금 젊은 세대를 보면, 그 당시에는 어떻게 젊은 세대들이 나라를 위해 자기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희생할 수 있었는지 하고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래서 해마다 6월은 우리 모두에게는 특별한 달로 여겨지는 것이다.   군인이란 나라가 필요할 때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의미한다. 그 숭고한 정신과 자세 때문에 애국충정으로 전쟁에서 희생당한 군인들을 생각하면 숙연해 지는 법이다. 꾀 오래 전에 제 2 연평 해전 당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장면은 우리 해군이 교전 중에 적군을 향해 총을 쏘다가 자기 손가락이 적탄에 맞아 떨어지자 그것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으로 총을 계속 쏘던 장면이다. 나는 이 군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가 나라를 위해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어서 자기 몸이 상한 줄도 모르고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 신문을 스크랩한 적 있다. 그가 하나의 유명한 영웅이 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다. 옆에 있는 전우를 위하고 동시에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는 것은 바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정신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도 이런 희생자들이 수없이 많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자기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죽은 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다. 로마 시대의 카타콤의 순교자들이 그렇고 가까이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의 순교자들이 그러했다. 이들이 단순한 애국자와 다른 점은 이들은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 이름 없는 별들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알아주실 것이다. 비록 그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버림받은 낙과(落果)처럼 희생되었지만 그날 주님께서 이름을 낱낱이 부르시며 높이실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무명의 희생자들처럼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믿음과 소망 때문인 것이다. 체면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자기 이름을 부각시키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참으로 현대 교인들이 뒷걸음친다는 감을 주는 듯하다. 이럴 때 우리는 진리를 위해 희생한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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